미팅에피소드

HOME 미팅가이드 미팅에피소드
번호, 제목, 등록일을 포함한 공지사항 게시글 보기
제목 혼수 때문에 불안한 이 결혼..할까? 말까?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7-22 조회수 508




연애를 하고 결혼을 앞둔 남녀에게도 행복한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사히 상견례를 끝내고 결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예물과 예단, 각자의 혼수를 두고 양가는 첨예한 대립을 할 수도, 이해하고 양보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이 때 나타나는 불협화음은 어쩌면 불행한 결혼 생활의 전초전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문제가 되고 있는 혼수란 과연 무엇인가?
남녀 간 사회적 결합체인 가족을 영위함에 최소한도로 필요한 물건들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대의 혼수는 진수의 '삼국지'고구려전에 "저녁에 사위가 집 밖에 와서 딸과 함께 자도록 간청하면, 장인.장모가 집 뒤에 지은 집으로 안내하여 딸과 함께 자도록 하는데, 사위는 이때 돈과 비단을 제공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 비로소 사위는 처자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돈과 비단은 혼수의 일종이며, 신랑이 신부쪽 집에서 일정기간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을 충당하기 위한 대가의 의미이다. 이후 자녀가 모두 성장하여 남편 집에 올 때도 부인이 준비하는 혼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와 백제의 혼수도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옷감이 주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옷감은 평소 조달하기 어려운 일상의 필수품으로서 고려 말에는 귀천을 막론하고 외국에서 수입한 호화 비단과 금.은.주옥을 혼수로 장만하는 사치스러운 풍조가 등장한다.

조선에 이르러 혼수와 예물은 더욱 중요시 되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양반의 딸로서 집안이 가난하여 혼수를 마련하지 못해 혼기를 놓친 경우 관에서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제도화되었다고 한다. 당시 반가에서는 혼수 없는 혼인은 예가 아닌 것으로 여겼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점차 사회가 안정되면서 세력있는 집안을 중심으로 혼수사치가 확산되기 시작하고 17세기 이후 신분제의 변화, 사회.정치적 혼란등으로 중인과 상인에게까지 호화혼수가 파급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지배계층의 혼수사치를 우려하는 사대부도 존재하여 "혼인을 의논함에 재물을 언급하는 사람과는 혼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혼인시 물질 교환을 경계하려는 태도도 공존했다.

결국 전통적 가부장제 가족제도 하에서는 여자가 시집의 구성원 속에 흡수되기에, 혼수 또한 여자가 시집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과 시집의 경제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로 옷감, 옷, 옷장, 이불, 그리고 땅문서 등이 주요 혼수품목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혼수 관행은 현대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집은 신랑이 여타 혼수는 신부 쪽에서 장만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혼수를 둘러싼 양가의 미묘한 갈등도 있어 일부 전문직 남성들의 경우 혼수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얼마전 사법연수원생의 과다혼수요구와 불륜이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다. 과중한 혼수에 내포된 신랑 신부의 불평등 관계는 사회적 쟁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혼을 하고 재혼을 위해 결혼정보회사를 찾은 사람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둘만의 연애 단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던 사람들이 혼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한 대립을 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대립의 근간을 이루는 두 집안의 의식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이런 결혼은 통상적으로 행복하기가 어렵다. 불행한 결혼의 전조 증상에 대해 원인을 생각해 보고, 신중하고 현명한 결정을 하는 것이 최선일 밖에.